전태일 열사는 치킨게임을 벌였을까?- by 모기불
모기불님은 평소 '사실을 알아내는 능력' 때문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블로그입니다. 환경운동가들의 거짓말이나 사회에 퍼진 비과학적 미신을 타파하시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 글뭉치들은 뭔가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넘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랬지. 부터 시작해서
전철연의 수익모델. 과
미국의 소송문화. 를 아우르는 글은 사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평소 모기불님의 태도와 같지요.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현재 논쟁에 끼치는 전후의 맥락'입니다. 텍스트 말고 컨텍스트 말이죠.
모드 없는 인터페이스(by alankang)라는 글의 일부를 잠깐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의 소재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를 기반으로 이번에는 모드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모드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사용자의 제스처에 대해 인간-기계 인터페이스가 다음의 두 조건을 만족시킬 때, 그 인터페이스는 모드적이라 할 수 있다. (1) 인터페이스의 현상태가 사용자의 주의 소재가 아니며, (2) 인터페이스가 하나의 제스처에 대해 시스템의 현상태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 --p54
예를 들어 MS-Word에서 Insert 키를 누르면 화면 하단의 상태바(status-bar)의 글귀가 삽입/겹쳐쓰기로 토글 됩니다. 실수로 Insert 키를 누르거나, 의도적으로 눌렀으나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한참 통화를 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잊은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화면 하단에 현재의 상태가 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표시가 사용자의 현재 주의 소재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 때 사용자가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하면 삽입 상태인지 겹쳐쓰기 상태인지에 따라 인터페이스가 다르게 동작할 것입니다. 이 상황은 (1) 인터페이스의 현상태가 사용자의 주의 소재가 아니며, (2) 인터페이스가 하나의 제스처에 대해 시스템의 현상태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 때문에 모드적입니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철저히 모드적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문장,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흐름 속에 있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쉬르의 화용론 같은 어려운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설명이 되겠지요.
모기불님께서는 이상의 글뭉치들을 통해서 이런 메세지를 전파하고 계신듯 하셨습니다.
1. 용산 참사의 주인공들은 다들 불법을 저질렀고, 전철연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 이용당했다.
2. 그러므로 그들의 생명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들은 더이상 '정당하지' 않다.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기불님께서는 덧글이나 포스팅을 통해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의 메세지는 맞는, 그리고 옳은 메세지입니다. 하지만 이 글이 인용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좀 이상합니다.
긍정적 인용 : 거봐라, 전철연 하수에 있는 철거 '시위꾼'들은 불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부정적 인용 : 믿을수 없다 (또는)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은 것인데 왜 그런 사실로 장난질이냐.
사실 둘 다 잘못 이해한 인용입니다. 모기불님께서는 '내가 의도한 바로 내 글이 쓰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지요.
그렇다고 모기불님의 책임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보죠.
어떤 사람이 대장장이의 공방을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 남과 싸우기를 좋아하고, 실제로 불량한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대장장이가 얼굴을 보니 불콰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칼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칼을 만들어 주자, 그날 밤 살인이 발생했고 이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대장장이는 '이 사람은 요리에 내 칼을 쓸 줄 알았다' 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기에, 어떻게 이 사람이 칼을 제대로 쓴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모기불님의 날카로운 사실이 거짓을 베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베는 칼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모기불님이 평소 주장하시는 '상식이 존재하는 사회'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잣대는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이 존재하는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비상식을 조정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이번 용산 참사는 이런 사회적 비상식의 조정과정에서 나온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공정함을 위해서 모기불님께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 미국 등의 외국 사례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지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1. 외국에서 시위를 할 경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2. 외국의 경우 재개발 현장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용역인력이 사용되는가?
3. 외국에서는 재개발 대상 주민의 재입주를 어떻게 보장하고 있는가? (집 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까지)
4. 외국에서의 재개발 대상 주민의 재입주율은 얼마나 되는가?
또한 궁금한 것은, 재개발(특히 용산) 대상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으로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하는 점입니다. 자신의 생계가 얼마나 위협받기에 망루에서 위험천만하게 대치하는지를 알아내어야만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모기불님의 날카로운 사실 판단 능력이 방향을 가리지 않고 발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면서 글을 마칩니다.